반응형

흔들리는 종이접시 우주선, 가짜 진실의 조악한 연출학과 완성도 저하 뒤에 숨겨진 창작자의 예술적 주체성 고찰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사상 최악의 감독'이라는 오명을 썼으나, 역설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성과 열정으로 하위문화(Subculture)의 신화가 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팀 버튼 감독의 오마주 영화로도 잘 알려진 에드 우드(Ed Wood) 감독입니다. 그가 1959년에 발표한 영화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Plan 9 from Outer Space)'은 영화 비평가들 사이에서 '역사상 가장 못 만든 영화 1위'로 공인받은 비운의 웰메이드(?) 졸작입니다.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말살하기 위해 공동묘지의 시체들을 좀비로 부활시킨다는 황당한 SF 호러 플롯을 기반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조악한 시각 효과와 엉성한 편집으로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반세기 뒤 시네필들과 예술학자들에게 찬란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비결은 기술적 완성도가 아닙니다. 오히려 완벽한 결함과 실패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창작자의 순수한 예술적 주체성'과 기만적이지 않은 아날로그 미학에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낚싯줄에 매달려 흔들리는 종이접시 우주선의 시각적 메커니즘, 예술적 엄숙주의를 전복시키는 키치(Kitsch) 디자인의 수사학, 그리고 가짜 진실 뒤에 박제된 인간 실존의 가치를 미장센 중심으로 심층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낚싯줄에 매달린 은빛 종이접시: 가짜 기술 자본주의를 깨부수는 키치(Kitsch) 공학
영화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의 오프닝과 전반부를 지배하는 가장 충격적인 미장센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외계인들의 '비행접시(UFO)'입니다. 막대한 VFX 자본을 투입해 관객의 눈을 속이는 할리우드 대작들의 하이테크 스케일과 달리, 에드 우드가 연출한 우주선은 헐값에 구매한 '할리우드형 종이접시와 자동차 허브캡(휠캡)'에 은박지를 붙이고 낚싯줄로 매달아 놓은 조악한 소품입니다. 화면 속 우주선이 이동할 때마다 카메라는 흔들리는 낚싯줄의 실루엣을 숨기지 못하고 고스란히 프레임 노출(Frame Exposure)시킵니다.
이 조악한 시각 효과는 장 보드리야르가 예언했던 '초과실재(Hyperreality)'의 완벽한 전복이자 안티테제입니다. 현대 상업 영화들이 완벽하게 코딩된 데이터 복사물(시뮬라크르)을 주입하여 관객의 이성과 인지 능력을 안락하게 사육한다면, 에드 우드의 종이접시 우주선은 "이것은 단지 은박지를 바른 접시일 뿐이다"라는 날 것의 '물질적 실재감'을 정직하게 폭로합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이 아우라를 상실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에드 우드는 거대 제작비라는 자본의 독점 시스템에 함몰되지 않고, 내 주변의 사소한 사물(종기접시)을 매개로 삼아 우주 대서사시의 플롯을 주체적으로 연출해 냈습니다. 조악함 자체가 주류 엘리트주의 미학의 오만을 비웃는 가장 힙하고 유쾌한 키치(Kitsch) 공학의 승리인 셈입니다.
2. 가짜 조종실과 묘지의 낮과 밤: 인위적 왜곡 편집이 만든 서사의 자유
감독과 미술 팀이 조립해 놓은 외계인 우주선 내부 조종실의 미장센은 관객에게 실소와 동시에 기이한 서사적 해방감을 안겨줍니다. 우주선의 최첨단 통제 장치들은 낡은 목재 책상 위에 플라스틱 샤워 커튼을 드리우고, 전자 장비 대신 조잡한 라디오 안테나 조각들을 소품으로 얹어놓은 공간입니다. 더욱 황당한 지점은 공간을 가르는 시간의 인과관계 편집 기술입니다. 인물들이 공동묘지 안에서 사투를 벌이는 단 한 시퀀스 안에서, 화면의 배경은 컷(Cut)이 바뀔 때마다 대낮의 햇빛(하이키 조명)과 새까만 한밤중(로우키 조명)의 시공간을 아무런 개연성 없이 오갑니다.
이 상식을 뒤엎는 편집 공학은 고전 서사의 매트릭스를 해체하는 포스트모던적 역설입니다. 에드 우드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할리우드 관료제가 요구하는 '절차적 사실성(Verisimilitude)'이나 규격화된 정밀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예술적 상상력과 이야기의 본질을 스크린 위에 구현하겠다는 숭고한 '창작의 열정' 하나만으로 필름의 톱니바퀴를 돌렸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 엉성한 왜곡 연출은 관객이 가진 완성도에 대한 강박증과 검열의 방어기제를 무장해제 시킵니다. 관객은 완벽한 시각적 사기극에 속아 사육당하는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조악한 단서(샤워 커튼 조종실)들을 스스로 무의식 속에서 재조립하며 영화적 유희를 함께 조율하는 주체적인 텍스트 해석자로 동참하게 되는 서사적 성취를 거두게 됩니다.
3. 벨라 루고시의 대역과 꺾이지 않는 마음: "내 영화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대망의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외계인들의 9호 계획(좀비 부활 주술)이 인간 군대의 반격 앞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파멸 시퀀스는, 영화 역사상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존재론적 승리입니다. 에드 우드는 자신이 동경하던 전설적인 드라큘라 배우 벨라 루고시가 촬영 초반에 사망하자, 그의 마지막 유작 필름 몇 분을 영화에 이식한 뒤, 얼굴이 전혀 닮지 않은 자신의 치과 의사에게 망토로 얼굴을 가리게 만들어 대역(Double)으로 쓰는 파격적인 기만전술을 감행합니다.
사르트르가 역설했듯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세상의 모든 자본과 평단은 에드 우드의 결과물을 '쓰레기 덩어리(본질)'라 조롱하고 도태시켰습니다. 그러나 타인의 비웃음이라는 성벽 앞에서도 "나는 위대한 영화감독이다"라는 주체적인 도덕적 사명(실존)을 단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에드 우드의 불굴의 의지는, 결국 이 영화를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하위문화 팬들이 매일 밤 미끼를 물듯 찾아보게 만드는 영원한 '컬트 신화'로 부활시켰습니다.
망토로 얼굴을 가린 가짜 배우의 클로즈업(Close-up) 화면과, 낚싯줄에 매달린 은빛 허브캡 우주선이 폭발하며 암전(Blackout)되는 마지막 미장센은 장엄한 인문학적 구원의 피날레를 선사합니다.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은 이처럼 조악한 시각 미학의 껍데기 속에 꺾이지 않는 예술적 주체성의 심장을 장착함으로써, 21세기 오늘날 디지털 그래픽 vfx 기술과 거대 자본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영혼을 저당 잡힌 채 규격화된 웰메이드 콘텐츠만을 기계적으로 양산해 가는 현대 자본주의 영화계를 향해, 예술의 본질은 완벽하게 세공된 숫자가 아닌 실패할지라도 멈추지 않는 '인간 영혼의 거친 숨결과 열정'뿐임을 온몸으로 증명해 낸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졸작이자 마스터피스입니다.
"자본의 결핍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은박지를 바른 종이접시 우주선과 샤워 커튼 조종실이라는 기발한 키치 미학으로 돌파하며 창작자의 순수한 예술적 주체성을 증명해 낸 에드 우드의 연출 공학은, 반대로 제작비의 극단적인 한계를 나무 판자와 복고풍 무빙이 결합한 독창적인 쉐이키캠 촬영 기술로 돌파하여 날것의 호러 카타르시스를 완성해 낸 독립 영화인들의 생존 마케팅과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하위문화 사회학적 맥을 같이 합니다. 제작비의 한계를 카메라 앵글과 육체적 아이디어로 돌파한 연출 기법이 궁금하시다면 [이블 데드(The Evil Dead)의 저예산 촬영 공학 분석 글(클릭)]을 함께 읽어보시길 권장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