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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일명 다니엘스)이 연출한 2022년작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7개 부문을 휩쓸며 21세기 시네마 역사에 거대한 획을 그은 SF 실존주의 걸작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낡은 코인세탁소를 운영하며 세무당국의 압박, 무능한 남편과의 이혼 위기, 성소수자 딸과의 갈등으로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이민자 여성 '에블린(양자경 분)'의 이야기입니다. 겉보기에는 정신없는 멀티버스(다중우주) 액션 코미디처럼 흘러가지만, 그 저변에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가장 깊은 정신적 질병인 '실존적 허무주의'를 해부하고 이를 극복하는 다정한 인문학적 해답이 미장센(Mise-en-Scène)으로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영화의 핵심 상징인 '베이글'과 '플라스틱 눈알'의 대조적 미학, 다중우주 속 세탁소가 갖는 철학적 의미,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혼돈을 관통하는 다정한 친절의 서사를 심층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조부 투파키의 '에브리띵 베이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블랙홀과 허무주의의 덫
영화 속에서 다중우주의 균열을 일으키는 절대적인 빌런 '조부 투파키'는 사실 에블린의 딸인 조이(스테파니 수 분)의 멀티버스적 자아입니다. 수많은 우주의 모든 기억과 지식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 조부는 극단적인 정신적 과부하에 걸려 철저한 '실존적 허무주의(Nihilism)'의 포로가 됩니다. 그녀는 모든 우주의 상식과 물질을 한데 모아 압축한 검은 구멍, 이른바 '에브리띵 베이글(Everything Bagel)'을 창조해 냅니다.
이 베이글의 미장센은 매우 영리하고도 소름 끼치는 철학적 은유입니다. 베이글은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원형의 빵입니다. 조부 투파키는 온 우주의 모든 성취, 명예, 사랑, 도덕을 한곳에 쏟아부었지만, 그 종착지에는 결국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완벽한 공허(Nothingness)'만이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이글 표면의 검은 참깨들이 소용돌이치며 주변의 빛과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시각 연출은 현대 물리학의 블랙홀이자, "인생은 어차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도덕적 허무주의의 시각화입니다.
조부가 엄마인 에블린을 찾아 헤맨 진짜 이유는 우주를 정복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우주의 가능성을 다 보고 나니 너무나 고독했던 조부는, 자신과 똑같이 다중우주를 인지할 수 있는 엄마의 손을 잡고 이 베이글의 공허 속으로 함께 뛰어내려 소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스 감독은 이 기괴한 베이글의 클로즈업(Close-up) 화면을 통해, 현대인들이 인터넷과 SNS의 범람 속에서 매일 마주하는 정보의 과잉(Everything)과 그 뒤에 찾아오는 지독한 정신적 상실감(Nothing)의 본질을 날카롭게 풍자했습니다.
2. 웨이먼드의 '플라스틱 눈알': 허무의 한복판에 심은 낙천주의적 미장센
에블린이 조부 투파키의 베이글에 동화되어 기존의 우주와 가족을 파괴하려 할 때, 그녀의 폭주를 막아서는 존재는 초인적인 영웅이 아닙니다. 현실 우주에서 늘 멍청해 보이고 세무서 직원 앞에서 쩔쩔매던 무능한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 분)'입니다. 웨이먼드는 세탁소의 낡은 가구들과 물건들에 시도 때도 없이 움직이는 장난감 '플라스틱 눈알(Googly Eyes)'을 붙여 놓아 에블린을 짜증 나게 만들던 인물이었습니다.
이 플라스틱 눈알은 조부 투파키의 베이글과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이 영화 최고의 핵심 미장센입니다. 형태를 보면 베이글은 바깥쪽이 검고 안쪽이 하얗게 비어 있지만, 눈알은 바깥쪽이 하얗고 안쪽 중심에 검은 눈동자가 박혀 있습니다. 베이글이 세상을 허무로 바라보는 파멸의 시선이라면, 눈알은 세상의 사소한 것들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려는 '다정한 시선'을 대변합니다.
웨이먼드가 다중우주의 전사들과 싸울 때 이 장난감 눈알을 이마 한가운데 붙여 인도 종교의 '제3의 눈(영적 각성)'처럼 연출한 시퀀스는 장취적 위트가 빛나는 명장면입니다. 웨이먼드의 낙천주의는 세상의 냉혹함을 몰라서 부리는 유치한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그는 인생이 고통스럽고 허무하다는 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전략적 생존 방식, 즉 '주체적 낙천주의'를 선택한 인물입니다. 웨이먼드의 이 눈알 미장센은 에블린으로 하여금 파멸의 블랙홀을 걷어내고, 내 곁에 존재하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구원의 렌즈로 작동합니다.
3. 다중우주 속 세탁소와 돌의 대화: 포스트모더니즘을 구원하는 '다정한 친절'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서로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특히 우리가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더더욱." 위기에 처한 멀티버스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웨이먼드가 눈물을 흘리며 던지는 이 대사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낳은 도덕적 혼돈을 종식시키는 위대한 철학적 선언입니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인간의 언어도 존재하지 않고 생명체도 살 수 없는 어느 우주의 '두 개의 돌(Rocks)'의 대화를 롱 테이크(Long-take)로 보여줍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화면 위에 자막으로만 이어지는 이 돌들의 대화 시퀀스는 관객에게 묘한 해방감과 안도감을 선사합니다. 광활한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인간의 모든 고민과 고통은 먼지보다 사소하며, 따라서 "아무것도 상관없다(Nothing matters)"는 허무주의적 명제는 뒤집어 생각하면 "그러므로 우리는 내 삶의 순간들을 내 마음대로 자유롭고 아름답게 채워갈 수 있다"는 실존주의적 축복으로 반전됩니다.
에블린은 마침내 웨이먼드의 다정함(친절)을 자신의 무기로 흡수합니다. 그녀는 자신을 공격하는 멀티버스의 적들을 폭력으로 굴복시키지 않고, 그들이 가슴속 깊이 열망하던 소박한 꿈(향수 냄새, 다정한 포옹 등)을 미장센으로 이루어주며 화해를 이끌어냅니다.
결말부, 쿵푸 마스터가 된 우주, 화려한 여배우가 된 우주 등 완벽하고 화려한 멀티버스의 가능성을 모두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에블린은 영수증 뭉치가 쌓여 있고 빨래가 돌아가는 현실의 '낡은 코인세탁소'를 자신의 최종 종착지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상처 입은 딸 조이를 품에 안으며 말합니다. "그 어떤 우주에 있을 수 있다 해도, 난 너와 함께 여기에 있을 거야." 화려한 매트릭스(가상)를 깨부수고, 지극히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내 눈앞의 가족과 일상을 선택한 위대한 사랑의 승리입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이처럼 어지러운 컴퓨터 그래픽과 파격적인 유머 속에, 세상이 아무리 미쳐 돌아가고 허무할지라도 우리가 서로를 향해 베푸는 조그만 '다정한 친절'만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임을 증명해 낸 21세기 최고의 인문학적 걸작입니다.
"온 우주의 찬란한 가능성을 모두 본 후 찾아오는 지독한 허무주의의 블랙홀을 깨부수고, 평범한 코인세탁소라는 날 것의 현실로 복귀하여 가족과의 다정한 일상을 선택한 에블린의 각성은, 거대 시스템이 주입하는 안락한 가짜 세계(파란 약)를 거부하고 불편할지라도 주체적 사유가 살아 숨 쉬는 진짜 현실(빨간 약)을 선택했던 SF 클래식 명작의 철학적 이정표와 정확히 일맥상통합니다. 통제된 세계관과 철학적 각성의 배경이 더 궁금하시다면 [매트릭스 빨간 약과 파란 약의 철학적 배경 해석 글(클릭)]을 함께 읽어보시길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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